
트럼프 폰(T1)이 출시됐다. HTC U24 Pro와 하드웨어가 판박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사실상 ODM 화이트라벨 제품(중국..산?)을 금색 케이스와 성조기로 포장한 것에 가깝다. 기술적 독창성은 사실상 제로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트럼프 진영에게는.
트럼프의 장사법
트럼프 측이 폰을 만드는 이유는 두 가지다. 지지자 기반의 팬덤 경제 수익화, 그리고 빅테크 대안이라는 이미지 구축.
라이선스만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는 구조이니 리스크는 낮다. 거기에 '47 플랜'이라는 월 $47.45짜리 요금제를 붙여 구독 수익까지 챙긴다. 45대이자 47대 대통령이라는 상징을 가격표에 박아넣었다. 운동화, 성경, 카드, 시계에 이어 스마트폰까지. 트럼프라는 이름이 붙으면 물건이 팔린다. 이것은 기술 사업이 아니라 브랜드 사업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신앙 사업이다.
구글과 애플이 보수의 목소리를 검열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만의 대안"을 제시하고, 황금 케이스와 성조기 문양으로 소장 가치를 높이고, "이걸 쓴다는 것은 곧 America First를 지지한다는 것"이라는 심리적 등식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정치적 굿즈다.
한국의 전광훈도 같은 구조다
탄핵 반대 집회는 '전광훈 몰'이 됐다. 알뜰폰 판매 부스, 된장, 화장품, 이승만 박정희 화보집. 집회 현장에서 "알뜰폰에 가입하면 애국하는 길"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딸이 운영하는 퍼스트모바일, 광화문몰 앱, 자유일보까지 - '전광훈 유니버스'라 불리는 사업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나는 이들의 도덕적 판단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매우 고전적이면서 강력한 세일즈 전략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당신도 매일 하고 있다
트럼프와 전광훈으로 세일즈 전략을 이야기하는 것이 거북하다면 한 번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오늘 링크드인에서 글을 끝까지 읽지도 않은 채 따봉 like만 누른 적이 있지 않은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리학에서 이것은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 부른다.
사회심리학자 Henri Tajfel과 John Turner가 1979년에 제시한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의 핵심 개념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자동적으로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그 집단의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Sherif의 유명한 '강도의 동굴(Robbers Cave)' 실험에서 보았듯이, 아이들조차 임의로 나뉜 집단에 대해 강한 내집단 편향을 보인다. 이것은 진화적으로 생존에 유리했던 메커니즘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참고로 '강도의 동굴(Robbers Cave)' 실험은 사회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가 1954년에 수행한 유명한 실험이다. 이 실험은 집단 간의 갈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적 집단 갈등 이론(Realistic Group Conflict Theory)'**의 핵심 근거가 되었다.
실험의 과정과 결과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1단계: 집단 형성 (Group Formation)
- 연구진은 서로 모르는 11세 소년 22명을 선정해 두 그룹으로 나누고, 오클라호마의 '강도의 동굴' 주립공원으로 여름 캠프를 보냈다.
- 활동: 각 그룹은 일주일 동안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하이킹, 수영 등 공동 과제를 수행했다.
- 결과: 짧은 시간 안에 각 그룹은 '독수리(Eagles)'와 '방울뱀(Rattlers)'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신들만의 서열과 규범을 만들며 강한 내집단 결속력을 보였다.
2단계: 집단 간 갈등 (Group Conflict)
- 두 그룹의 존재를 알린 뒤, 야구, 줄다리기 등 승패가 갈리는 경쟁 게임을 시켰다.
- 승자에게는 트로피와 메달을, 패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 현상: 초기에는 가벼운 야유로 시작했으나, 곧 상대 그룹의 깃발을 태우거나 숙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등 공격성이 폭발했다.
- 심리: 자기 그룹은 '선(Good)'으로, 상대 그룹은 '악(Bad)'으로 규정하는 전형적인 편견과 적대감이 형성되었다.
3단계: 갈등 해소 (Conflict Resolution)
- 연구진은 단순히 두 그룹을 같이 있게 하는 것만으로는 갈등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상위 목표(Superordinate Goals)'**를 제시했다.
- 전략: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고 두 그룹이 힘을 합쳐야만 풀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예: 캠프장 급수관 수리하기, 고장 난 트럭 밀기 등)
- 결과: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적대감이 사라지고, 나중에는 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갈 정도로 관계가 회복되었다.
실험이 주는 교훈
- 자원의 희소성: 한정된 자원(상금 등)을 두고 경쟁할 때 집단 간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 내집단 편향: "우리"라는 소속감이 생기면 특별한 이유 없이도 "남"을 배척하기 쉽다.
- 협력의 힘: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공동의 위기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경험할 만한 사례로 이야기하면 진급해야 하는데 S 받을 TO가 1명이면 서로 기싸움한다는 것이고 우리팀한테 자꾸 태클거는 팀하고는 밥 같이 안먹는 것이고 악질 임원이 오면 다같이 힘을 합쳐 뒷담화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 실험은 오늘날 인종 갈등, 정치적 대립, 기업 내 부서 간 이기주의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여기에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결합된다. 사람은 자신의 기존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찾고, 해석하고, 기억한다. 인지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세계관에 도전하는 정보를 접하면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재평가하기보다 오히려 기존 입장을 더 강화하는 '역효과(Backfire Effect)'를 보인다. 논쟁에서 이길 때 분비되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쾌감을 만들고, 그 쾌감을 반복하려는 뇌의 작동 방식이 확증 편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동질감과 라포를 형성해서 그것으로 사실 관계를 해치는 것. 이것은 대단히 일반적인 인간의 행위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트럼프나 전광훈이 하면 불쾌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자신부터 돌아보는 것이 이성적인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특정 방향으로 편향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두리 양식장이 먼저다
이들이 악인인지 광인인지 모르겠다. 도덕적 판단은 제쳐두고, 나는 이들의 세일즈 전략이 매우 치밀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자신을 지지하도록 만들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일종의 마켓을 형성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락인 전략 - 아니 가두리 양식장 전략의 시초는 정치나 종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이 구조의 역사는 깊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면죄부를 팔았다. 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본질은 신앙이라는 가두리 안에 가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었다. 근대 국가는 애국심이라는 가두리를 만들어 국채를 팔았고, 전쟁 비용을 조달했다. 트럼프가 성조기와 황금 케이스로 하는 것, 전광훈이 "애국"이라는 단어로 알뜰폰을 파는 것은 인류가 수천 년간 반복해온 패턴의 21세기 버전일 뿐이다. 먼저 울타리를 치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특별하다"고 말한 뒤, 상품을 내민다. 순서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작은 스타트업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가두리 양식장이 없는데 코딩만 냅다 하는 경우가 8할이다. CB Insights가 스타트업 111곳의 실패 원인을 조사했을 때, 1위가 현금 부족(38%)이었고 2위가 시장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35%)이었다. 2위를 다시 말하면, 물고기가 없는 바다에 양식장을 지은 셈이다. 매쉬업벤처스도 같은 말을 한다. 적합한 솔루션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제대로 찾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코드가 없어도 돌아가는 것이 비즈니스이다.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는 길거리 전단지를 모으는 것에서 시작했다. 코드가 아니라 '치킨집 사장님은 전단지를 뿌리고 싶고, 손님은 메뉴판을 보고 싶다'는 양쪽의 욕구가 먼저 있었다. 가두리가 먼저 있었고, 앱은 나중이었다.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8번 실패하고 9번째에 성공했는데, 앞선 8번의 실패에는 초음파 통신 SNS 같은 기술 중심 제품이 포함되어 있었다. '복잡한 인터넷 결제를 간단하게 해달라'는 시장의 절실한 요구 - 즉 가두리를 발견한 것이 토스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그것을 반대로 적용한다. 프리A 투자에 성공한 기업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투자씬에서 자신의 기획이 먹혔다는 기쁨에 사로잡혀, 정작 시장의 진실을 바라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를 매우 쉽게 볼 수 있다. VC가 '좋다'고 한 것과 시장이 '좋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 이 둘을 혼동하는 순간 가두리 없는 양식을 시작하게 된다.
반대로 정말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의 경우에는 트럼프나 전광훈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더 친숙하다. 돈을 주는 쪽과 받는 쪽이 견고하게 맞아 떨어져서 큰 힘을 들이지 않는다. 동네 미용실이 단골 고객에게 할인권을 주는 것, 보험 설계사가 교회 모임에서 영업하는 것,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주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두리 양식장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IT가 매우 힘을 더해준다. 카카오톡 채널이 동네 미용실의 가두리를 디지털화하고, CRM 소프트웨어가 보험 설계사의 관계망을 체계화한다. IT는 이미 존재하는 가두리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도구로서 가장 강력하다.
반대로 IT가 먼저 존재해서 시장에서 힘을 받는 경우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2015~2019년 사이에 거의 멸종했다고 보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2015년 국내 스타트업 유망 투자 분야 1위가 O2O였다. 그 이후 세탁 대행, 주차 대행, 꽃 배달, 도시락 배달, 가사도우미 매칭 등 수백 개의 O2O 스타트업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기술이 수요를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지만, 가두리가 없었다. 앱을 깔았다가 한 번 쓰고 지우는 사용자는 양식장의 물고기가 아니라 지나가던 회유어였을 뿐이다. 살아남은 것은 배달의민족이나 야놀자처럼 '사장님은 손님이 필요하고, 손님은 할인이 필요하다'는 양쪽의 절실함을 먼저 포착한 서비스들이었다.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가두리가 먼저였다.

에이전트 시대, 당신의 업은 무엇인가?
개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에이전트로 뭘 빠르게 한다고 계속 이야기하는데, 그 '무엇'이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에이전트가 코드를 짜주고, 보고서를 써주고, 이메일을 대신 보내준다. 좋다. 그런데 내가 에이전트를 잘 쓰게 된다는 것은 상대방도 에이전트를 잘 쓴다는 소리이고, 내 상사도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같은 도구를 쥐면 도구는 경쟁력이 아니라 기본값이 된다. 엑셀이 나왔을 때 엑셀을 잘 쓰는 사람이 잠깐 빛났지만, 곧 엑셀은 신입사원의 최소 요건이 되었다. 에이전트도 같은 경로를 밟을 것이다. 다만 그 속도가 엑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는 것이 문제다.
동시에 AI가 매일매일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이전트로 무엇을 빠르게 처리하느냐보다 나의 업(業)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오히려 개인에게 더 나을 것이다. 가두리 양식장의 논리를 개인에게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 당신에게 물고기를 사줄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왜 당신의 물고기여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양식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먼저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나는 LG전자에서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눈앞의 것만 보면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2007년부터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봤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던 시기, 안드로이드가 뒤엎고 있던 시기, 매년 새로운 플랫폼과 새로운 기술 스택이 등장하던 시기.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밤을 새워 새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그 기술이 쓸모없어지면 또 다음 기술을 익혔다. 파도를 타는 것이 아니라 파도에 쫓기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끝도 보았다. 대부분 지쳐서 몸이나 마음이 고장나거나, 퇴사 후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그중 아주 극히 일부가 원하는 대로 속도에 맞춰 그 길을 계속 걸어간다. 물론 그 역시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살아남은 소수의 공통점이 '기술을 가장 빨리 따라잡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해결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기술은 바뀌어도 문제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이것 역시 가두리의 논리다.
과거에는 대기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던 일이, 이제는 10명 이하의 기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때와 지금의 유일하게 달라진 부분이다. 아니, 하나 더 달라진 것이 있다. 대기업은 적어도 파도에 쫓기다 쓰러진 사람을 연봉과 복지라는 이름의 그물로 잡아주었다. 10명짜리 스타트업에는 그 그물조차 없다.

트럼프폰의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 HTC와 판박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기 전에 이미 사야 할 이유가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당신의 업은 그러한가?

